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/생애 (문단 편집) ==== 청야전술 ==== 나폴레옹의 대군이 러시아를 공격할 당시 24만명이었던 러시아 국경수비군은 프랑스군에 맞서 방어했지만,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후퇴해야 했다. 프랑스군은 그 여세를 몰아 1812년 8월에는 스몰렌스크까지 점령했다. 문제는 그 스몰렌스크라는 지역이 수도 모스크바로 가는 길목이었다는 점이다. 러시아의 [[알렉산드르 1세]]는 전열을 재정비하고 쿠투조프를 새 사령관으로 임명하면서, 반격을 준비했다. 8월 말 쿠투조프 사령관은 모스크바의 근교인 [[보로디노 전투|보로디노에서 전투를 벌여]] 비록 어느 한쪽이 승리하지는 못했지만, 프랑스군 5만 명을 섬멸하기도 했었다. 쿠투조프 사령관과 알렉산드르 1세는 마침내 모스크바를 비우고 후퇴하는 작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. 이전까지 프랑스에 맞서 수없이 전투를 치렀던 [[러시아 제국군]] 사령관 [[미하일 쿠투조프]] 장군은 [[청야전술]]을 펼쳐서, 러시아 국토 내부로 프랑스군을 깊숙이 끌어들이며 꾸준히 반격을 가해 차츰 프랑스군의 희생자를 늘렸다. 다만, 이 후퇴작전을 총지휘한 것은 쿠투조프가 아니라 [[스코틀랜드]]계 조상을 둔 발트태생 바클라이 드톨리였고, 쿠투조프는 보로디노 전투 전부터 러시아군을 지휘했다. 청야전술은 의도된 것이 아니라는게 현재 중론이고 초기 경질된 '바클라이 드톨리'의 공이 컸지만, 외국계라 쿠투조프만 민족영웅이 된 것. [[알렉산드르 1세]], [[미하일 쿠투조프]], [[러시아 원정]] 참조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